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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캄보디아

    캄보디아,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그늘 — 방치된 청년, 그리고 아이러니한 나

    며칠 전, 뉴스를 통해 들은 소식이 있었다.
    외교부가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 대해 여행금지령(4단계)을 발령했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그곳에서 한국인이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되고, 심지어 고문을 당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내게는 너무도 가까운 현실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친구의 전화

    작년에 총알 제거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55년 전, 초등학교 입학식 날 얼굴에 맞은 산탄총알 세 개가 아직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 때는 기술 부족으로 빼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종합검진 때 뇌 사진을 촬영을 하려는데 청랄 때문에 못한다고 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줄 몰라 수술을 하기 결심한 것이다.
    그날,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오랜 친구 박 장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한데… 2천만 원만 빌려줄 수 있겠나?
    아들이 캄보디아에서 억류돼 있다네.
    돈이 있어야 풀려날 수 있다…”

    통장에 돈은 있었다.
    하지만 수술비가 얼마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던잃고 친구 잃는 것이 두려워 솔직히 그 돈을 선뜻 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돈도, 사람도, 믿음도 복잡했던 순간

    그 장로의 아들은 공익요원 순서를 기다리며 몇 년째 집에서 놀던 아이였다.
    그러다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캄보디아로 건너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 한켠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거기서 고생 좀 해봐야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목소리가 속에서 들려왔다.

    “그래도 네가 친구라면, 그의 아버지라면…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

    결국 나는 돈을 빌려주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무겁게 남았다.


    캄보디아
    캄보디아

    다행히 돌아온 아이, 그러나 여전히 남은 문제

    다행히 친구의 아들은 카타르에서 목회를 하는 삼촌의 도움으로
    큰돈 들이지 않고 풀려났다.
    그 순간은 감사했지만, 생각할수록 씁쓸했다.

    그 아이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아들, 딸, 친구가 외국 감옥이나 감금 시설에 묶여 울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유혹한 건 ‘돈’이 아니라 방치된 시간과 사회의 무관심이었다.


    ‘대기 중인 청년들’, 우리 사회가 만든 그림자

    퇴직 후 사회 현장을 다시 보니,
    공익요원 순서를 기다리며 몇 년을 허비하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내 동서의 아들도 몇 년을 놀다가 올해에야 군 복무를 마쳤다.

    군인은 모자라다면서,
    왜 이렇게 멀쩡한 젊은이들을
    무위도식하게 사회에 방치해두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
    누군가는 허위 해외취업 광고를 올리고,
    누군가는 불법 조직으로 유혹의 손을 내민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방심이 아니라,
    제도의 구멍이 만든 사회적 재난이다.


    캄보디아
    캄보디아

    총알을 빼던 날, 의사의 한마디

    수술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의사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즘 의료 분쟁으로 의사들 다 떠나서 부족한데,
    하필 55년 된 총알을 이제 빼세요?”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

    나는 의료 분쟁 뉴스를 보며
    의사들과 의대생들을 욕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돈밖에 모른다”, “양심이 없다”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그런데 지금,
    정작 내 생명을 그들의 손에 맡기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세상 일은,
    멀리서 볼 때는 ‘흑백’이지만
    막상 부딪치면 ‘회색’으로 보인다.
    나는 그 회색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결국 남은 건, 사랑과 책임

    친구의 아들을 구해준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었다.
    의사의 손도, 친구의 손도, 사회의 손길도
    결국은 ‘사랑의 확장선’이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사람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분류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식이 곧 내 자식이 되고,
    누군가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방치’이고, 세상에서 가장 큰 구원은 ‘관심’이다.”


     

    캄보디아
    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사건도,
    병원에서 들은 의사의 농담도,
    모두 내게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욕하기보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책임질 차례다.”

     

     


    55년 만에 머리 속 총알을 빼냈다.
    총알보다 더 무거운 건,
    세상을 단정 지어 비판하던 내 마음의 조각이었다.

    그걸 빼내는 데는
    마취도, 수술도 필요 없었다.
    오직 깨달음과 회개의 시간만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