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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잔혹함

    — 숙행 논란을 바라보는 불편한 진실

    숙행
    숙행

    요즘 한국 사회는 트로트 가수 숙행의 문제를 두고 유난히 소란스럽다.
    사실관계가 충분히 정리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은 결론을 내려버렸다.
    사과가 나오기도 전에 단죄가 시작되고, 해명 이전에 퇴출을 요구한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연예인과 공인을 같은 방식으로 소비해 왔다.
    그리고 늘 같은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공인이니까.”
    “실망했으니까.”
    “본보기를 보여야 하니까.”

    그러나 정말 그럴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정의일까, 아니면 집단적 분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희생양일까.


    1. 우리는 언제부터 연예인을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보기 시작했는가

    연예인은 직업이다.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 서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 직업이 인간성을 반납해야 하는 계약서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연예인에게 묻는다.

    • 늘 바르게 생각하라
    • 언제나 모범적이어라
    • 사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말라
    •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요구는 직업윤리가 아니라 비현실적 강요다.
    연예인을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로만 소비할 때,
    그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금이 가면 우리는 분노한다.

    왜냐하면,
    그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우리가 돈과 관심을 썼다고 믿기 때문이다.


    2. “실망했다”는 말의 위험한 구조

    사람들이 가장 쉽게 꺼내는 말은 “실망했다”이다.
    이 말은 얼핏 정당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위험한 전제가 숨어 있다.

    “나는 너를 이상적인 존재로 설정해 두었다.”

    그 설정에 실패하면,
    우리는 상대를 비난할 권리가 생긴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연예인이 우리에게 도덕적 완벽을 약속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일방적으로 만든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가?

    실망은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실망을 이유로 돌을 던지는 순간,
    그 감정은 폭력이 된다.


    3. 사실보다 빠른 분노, 맥락 없는 정의감

    지금 이 논란의 핵심은
    ‘무엇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누가 먼저 욕했는가’로 흘러가고 있다.

    • 기사 제목만 보고 분노한다
    • 짧은 클립 하나로 판단한다
    • 누군가의 해명은 “변명”으로 미리 규정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은 사라진다.

    • 맥락
    • 시간
    • 당사자의 입장
    • 사실 확인

    우리는 정의를 말하지만,
    정작 정의가 요구하는 절차와 인내는 견디지 못한다.


    4. “그럴 수 있다”는 말이 사라진 사회의 특징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무책임의 변명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겠다는 최소한의 태도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이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 실수하면 끝이다
    • 논란이면 퇴출이다
    • 한 번 찍히면 회복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 솔직해지지 않는다
    • 감정을 숨긴다
    • 가면을 쓴다

    그리고 그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우리는 더 큰 분노로 응징한다.

    이 악순환 속에서
    누군가는 무너지고,
    우리는 또 하나의 “정의로운 처벌”을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5. 공인의 책임과 대중의 책임은 다르다

    분명히 하자.
    공인에게는 책임이 있다.
    잘못이 있다면, 설명하고 사과하고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에게도 책임이 있다.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지 않을 책임
    • 인간을 단일 사건으로 환원하지 않을 책임
    • 분노를 소비하지 않을 책임

    지금 우리는 이 책임을 너무 쉽게 내려놓고 있다.
    “다들 욕하니까”라는 말 뒤에 숨어서.


    6.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숙행’이 아니다

    지금 이 사태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특정 연예인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돌을 던지면서도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믿는 집단 심리다.

    이 심리는 언제든 방향을 바꾼다.
    오늘은 숙행이고,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결론: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완벽한 사람만 살아남는 사회인가?
    아니면 실수해도 돌아올 수 있는 사회인가?

    비판은 필요하다.
    책임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해 없는 비난은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
    인간이니까.

    이 단순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더 잔인해질 뿐이다.